소쇄원 (瀟灑園)
한국의 대표적인 정원 소쇄원(瀟灑園)은
조선시대 조광조(趙光祖)가 훈구파의 탄압으로
전라남도 화순 능주로 유배되자 자신의 은사를 따라 낙향한 양산보가
세상의 뜻을 버리고 향리인 지석마을에 숨어살면서
계곡을 중심으로 만들어놓은 작은 정원이라고 한다.
소쇄원의 조성배경에는 주자(朱子)의 사상이 짙게 베어있는데
중국(中國) 숭안현(崇安縣) 무이산(武夷山)계곡의 경승지인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현실(現實)을 도피하여 은둔하였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것도 그런 연유인것 같다.
소쇄원의 ‘소쇄’는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한다.
소쇄원(瀟灑園) 제월당
입구
오리
대봉대
대봉대는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대를 쌓고 정자(소정)를 지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대봉대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사방 1칸의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는 현재의 초정 대봉대는 1985년경에 재건된 것이다.
소쇄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 소정은 시원한 벽오동나무의 그늘에 앉아
봉황새(귀한 손님)를 기다리는 집이다. 「소쇄원48영」의
주요한 시점의 하나로 여기에서면 소쇄원의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오곡문
오곡문
오곡문 (五曲門)
오곡문은 담밑의 구멍으로 흐르는 계곡물 ‘원규투류垣竅透流’
바로 옆쪽에 있던 협문夾門 형식으로서 담밖의 영역(외원)과 담안의 영역(내원)을 이어주는문이었다.
현재의 문이 있었던 옛자리에 구멍만 뚫려 있는 정도이며, 이를 대신하여 담장에 글씨로 쓰여있다.
제월당
제월당
제월당은 정자라기 보다는 정사精舍의 성격을 띄는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이었다.
당호인 제월霽月은 ‘비 갠 뒤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쇄원도」에 나타난 제월당이나 광풍각이 48영이나 『유서석록』에는 나타나지 않아 흥미롭다.
물론 광풍각이 48영이나 유서석록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지는 하지만 제월당은
『유서석록』이 제작된 당시인 1574년에는 아직 건립되지 않은 것이 아니냐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제월당은 소당小堂, 고당高堂이라 불리기도 한다.
담장
소쇄원에는 몇 개소에 담장이 둘러져 있는데 이들은 외원과내원을 구분지어주는 경계이다.
광풍각
광풍각
광풍각
광풍각
광풍각은 소쇄원의 하단에 있는 별당으로 건축된 정면 3칸, 측면 1칸 전후퇴의 팔작지붕 한식기와 건물이다.
양산보가 계곡 가까이 세운 정자를 광풍각이라 하고
방과 대청마루가 붙은 집을 제월당이라고 한 것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1017~1073)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라고 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어찌보면 처사로서 양산보의 삶이 마음에 맑고 깨끗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자죽총 (紫竹叢)
자죽총 (紫竹叢)
소쇄원 입구의 대나무 숲을 말한다.
소쇄원(瀟灑園) 입구의 단풍
소쇄원(瀟灑園) 입구의 단풍
소쇄원(瀟灑園) 입구의 단풍
소쇄원(瀟灑園) 입구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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